은혜
Column | 담임목사님 칼럼
부족함은 사명의 원동력이다
최병락 담임목사
해마다 연말이 되면 뉴스에 등장하는 훈훈한 소식들이 있다.

평생을 김밥을 말아서 팔던 할머니가 어느 대학교에 몇 억을 기부했다는 소식, 평생 시장에서 생선을 팔아서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전 재산을 기부했다는 식의 뉴스가 우리를 감동시킨다. 과연 이 할머니들은 왜 그렇게 어렵게 번 돈을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남을 위해 내어 놓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당신들이 그렇게 어렵게 살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기의 전 재산을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부족함은 사명감의 원동력이 된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넉넉히 이해하는 넓은 품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부족함은 사명이 잉태되는 인큐베이터이다.

말더듬이들의 반란

역사에는 기억될 탁월한 연설들이 있다. 여러 연설가가 있지만 가장 위대한 연설로 꼽는 연설은 1941년 영국의 메로우 고등학교의 졸업에서 했던 윈스턴 처칠의 연설일 것이다. 당시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독일군과 연합군의 팽팽한 긴장속에서 세계는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고 처칠 수상은 졸업식 연설자로 초청을 받았다. 그것은 한 고등학교의 졸업식 연설이 아니라 전 세계의 언론이 주목하는 젊은이들에게 향하는 아주 중요한 연설이었다. 단위에 올라선 처칠은 회중들을 바라보면서 잠시의 침묵을 한 뒤 예의 그 진중한 목소리로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젊은이 들이여,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보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짧은 연설로 인해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불굴의 정신이 생겨 2차 세계 대전을 마무리 짓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연설의 내용이 아니라 연설을 한 윈스턴 처칠 수상이다.

역사 속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설을 했던 이 윈스턴 처칠은 어렸을 적에 극심한 말더듬이었다. 그는 말더듬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고 마침내 그것을 극복하였을 뿐 아니라, 탁월한 연설가가 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가 되었다. 부족함은 사명감을 키우는 인큐베이터이다. 그가 부족하지 않았다면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때문에 가장 두렵고 떨었던 사람은 모세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모세는 그 단점 때문에 아론이라고 하는 말 잘하는 동역자를 얻는 기회가 됐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과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우리가 얻을 수 없는 것도 얻게 하시고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신다.

나는 대학 다닐 때 운전면허 시험을 필기만 일곱 번을 떨어졌다. 처음엔 공부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붙는다고 해서 그냥 시험장에 갔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다음 번엔 꽤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또 불합격을 했다. 결국 일곱 번을 떨어지고 시골시험장이 쉽다는 말을 듣고 가서 본 시험에서 80점을 받고 합격하게 되었다. 그날의 감격은 20년이 넘도록 잊혀 지지 않는다. 그런 창피하고 쓰라린 실패의 경험이 나에게 안겨준 유익은 무엇일까? 그 유익은 23년 무사고라는 것이다. 그 일곱 번을 공부하느라 그 누구보다 교통법규를 잘 알게 되었고 그 기간 동안 누구보다도 실기연습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지금도 안전운행은 누구도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말더듬의 부족함과 아픔이 탁월한 연설가의 밑거름이 되듯, 나의 연속적인 실패는 모범운전자로 나를 만들었던 것이다. 위대한 사도인 바울은 자기가 목양하는 성도들로부터 글에는 중하나 말에는 졸하다는 놀림을 받았다. 그랬던 그는 그 부족함 때문에 말에 더욱 신경을 쓰고 노력하였을 것이다. 마침내 사도행전 16장부터 보면 바울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넘쳐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역사가 일어났다. 더불어 그의 말의 핸디캡으로 글쓰기의 능력이 더욱 더 탁월해졌던 것을 보게 된다. 그의 말더듬의 부족함으로 글의 능력이 나타났고, 나중에는 말에도 능력이 나타났다. 부족함은 사명감을 키우는 인큐베이터가 분명하다.

가난해도 괜찮아

나는 1998년도 4월 결혼을 하고 5월에 아내와 함께 미국에 유학을 왔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미국 정부에서 발급 하는 노동허가증을 받아 공부와 함께 일을 병행해야만 했었다. 두, 세 가지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했기 때문에 일주일 에 3-4일은 기본적으로 밤을 새워야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준비하고 계시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저 가난해서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 정도로만 생각할 뿐이었고 가끔씩 신세 한탄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대학원을 마치기도 전에 한 학기를 남겨놓고 하나님은 나에게 달라스 인근에서 미국교회 건물을 빌려 쓰면서 주일 오후에만 예배를 드리는 15명의 성도와 교회를 맡기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설교를 통해 우리 성도들로 부터 듣는 가장 많은 피드백은 다음과 같다. “목사님은 우리의 형편을 너무 잘 아셔요. 목사님은 우리를 잘 이해하고 우리의 아픔을 아셔요.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도 구체적이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금세 깨닫게 돼요.”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직접 그들처럼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고민과 갈등, 힘든 점이 무엇인지 모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겪은 모든 경험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사용하셨던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능력이 어디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매료되는 이유는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적인 모습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든 약함과 부족함을 친히 경험하셨기 때문에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의 약함과 부족함을 이해하시고 나아가 우리의 부족함을 친히 채워주시는 것이다. 이 진리를 깨우쳤다면 이제 이렇게 외쳐도 될 것이다. 가난해도 괜찮아! 부족해도 괜찮아”

요셉 이야기

부족함이 사명의 밑거름으로 사용된 성경의 인물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요셉이다. 요셉만큼 불행한 인생이 또 있을 까. 그는 인생 전체가 부족함의 연속이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없었다. 자라면서 형제들로 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철이 들 무렵에는 형제들로부터 인신매매를 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또한 노예로 팔려가 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자유가 부족한 노예로 살았다. 보디발의 신의를 얻고 가정의 총무까지 되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말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 죄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실함으로 감옥의 제반사무를 맡는 책임자가 된다. 그곳에서 술맡은 관원장과 떡맡은 관원장을 만난다. 나중에 술맡은 관원장은 복직되고 떡맡은 관원장은 사형을 당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나는듯 하다. 요셉은 그로부터 평생 감옥에서 부족함 투성이로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이 모든 부족함의 경험들을 사용하기로 결심을 하셨다. 그리고 바로의 꿈에 나타나셔서 앞으로 애굽에서 일어나게 될 흉년과 풍년에 대한 징조를 보여주셨고, 요셉을 통해 그 꿈을 해석하게 해주셨다. 그리고 결국 총리대신이라고 하는 범인이 받을 수 없는 직책을 받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이다. 아무리 요셉이 꿈을 잘 해석하는 해몽가라고 할지라도 애굽이라고 하는 대국을 경영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이다. 그런데 요셉에게 그 직책이 맡겨졌다. 과연 어떻게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을 살릴수 있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은 요셉의 부족한 시절의 경험을 사용하셨다. 요셉은 이미 총리대신이 되기 전에 총리대신의 수업을 알뜰하게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선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애굽의 국방부의 모든 시스템과 경영방법을 배웠고, 감옥에 와서는 당시 애굽의 내무부 장관격에 해당하는 떡맡은 관원장을 통해서 애굽 안의 살림에 대해서 배웠으며, 외무부장관에 해당하는 술맡은 장관을 통해서 애굽이 상대하는 이웃나라들과의 외교에 대해서 치밀하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부족함의 상태는 하나님께 최고의 과외수업을 받는 시간이다. 절대로 신세나 한탄하고 있을 시간이 아니다. 그곳에서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한다. 요셉의 모든 순간은 하나님의 훈련이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 시키시는 과외수업에 성실히 임하길 바란다. 주인공 배우가 대본에서 외우기 어려운 대사를 임의로 빼버리거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각색을 한다면 주인공이 바뀌던지 드라마가 졸작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 가운데 쓰고 계시는 요셉같은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서 있는 여러분들이 힘들어도 그 드라마를 각색하거나 중요한 역할을 빼먹지 않고 성실하게 임한다면 요셉의 이야기는 절대로 요셉 한 사람의 영웅담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것임을 믿는다.